음악이 그림이 되는 순간 ― 파울 클레를 닮은 오후

 음악이 그림이 되는 순간 ― 파울 클레를 닮은 오후

스위스에서 태어난 독일인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그는 피카소, 마티스와 함께 20세기를 빛낸 거장으로,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미술의 시조라 불린다.
하지만 클레의 그림은 단순히 추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의 화폭에는 음악이 흐르고, 색이 노래한다.

클레의 집안은 음악으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음악교사였고,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프로 수준의 연주를 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음악은 그의 첫 언어였고, 예술은 그 언어가 변주된 또 하나의 멜로디였다.

그래서였을까.
음악을 사랑하는 내 딸도 파울 클레의 그림 앞에서는 유독 오래 머문다.
화려하지 않은 색감, 단순한 선과 면, 그러나 그 속에 감춰진 리듬과 울림.
그녀는 “이건 색으로 연주한 음악 같아.”라고 말했다.
순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클레는 말했다.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클레의 그림은 감정의 악보 같다.
색은 음표가 되고, 선은 리듬이 된다.

                              

세네치오(나이든사람,1922): 클레자화상

그가 남긴 작품 〈세네치오(Senecio, 1922)〉에서는
색면이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의 얼굴을 그린 듯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과 인간의 내면이 겹겹이 쌓여 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음색으로 울리는 그림이다.

고흐의 작품을 보고
‘별의 연소 때문에 괴로워하는 영혼을 느꼈다’고 말한 클레.
그 역시 예술의 본질을 빛과 고통의 공존에서 찾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늘 달콤하면서도 쌉쌀하다.
그의 대표작 〈달콤쌉쌀한 섬〉이라는 제목처럼.

요즘 나는 클레의 그림을 볼 때마다
‘삶도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과 색, 기쁨과 슬픔, 조화와 불협이 섞여
어딘가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클레는 말했다.
“나는 색의 선율을 듣는다.”
그 말처럼, 오늘도 나는 음악처럼 흘러가는 그의 그림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음을 그린다.
내 삶의 색은 지금 어떤 리듬으로 울리고 있을까.

파울클레는 “예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자신의 삶의 경험과 자연을 다양한 색면과 단순한 선을 이용해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100x126): 모자이크 같은 점묘법과 기하학적인 구성
클레가 이집트 여행을 했을때 받은 인상을 화면에 옮겨놓은 작품
이집트 피라미드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마왕 신해철이 자신의 봉분은 피마미드 안도 해 달라고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피라미드를 보면 예술가들은 무엇인가가 떠오르는가 보다

스위스베른에 있다는 '파울클레센미술관'에 가보고 싶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피아노'에 의해 설계된 박물관이라 한다.

#세네치호 #파울쿨레 #신해철 #렌조피아노 #노인미술 #성공적노후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갤러리]동시대의미술

[청류]오늘도 빛난 하루 그대와 동행~선배에게서 카톡이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