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6_ 소수림왕은 어떤 왕이었나요?

 고구려 6권을 읽고~~



1.구부(소수림왕)는 어떤 왕이었나요?

소수림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71~384년이며, 부왕인 고국원왕이 백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부왕의 팽창정책 실패로 인한 사회의 동요를 극복하기 위해 일련의 체제 정비에 나섰다. 불교를 수용하고 보급하기 위해 전진의 승려 순도와 아도를 맞아들였고,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해 유교이념의 확대를 도모했다. 국가 통치의 기본법인 율령을 반포하여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에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4세기말∼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를 가져오는 기틀이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을불(미천왕),사유(고국원왕)와는 달랐던 구부만의 철학은 무엇이었나요?

3.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무엇을 의미하고,이것을 통해 진시황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회복지 행정론 시간에 중국영화 '영웅'을 본 적이 있다. 강력한 법을 세웠지만 법에의해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을 처형해야 했던 '진시황'의 이야기...우리나라가 지금 민주국가에서 '법치국가' 로 도약하는 시점이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지금의 현실과도 ..옳지 않은 일도 법망을 벗어나면 합리적인 세상이 되는 지금.. (소설에서는 단청이 아버지가 예법을 지키지 못해 맞아 죽었던 사건을 통해 예법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표를 갖게 함)

4. ‘공자’에 대해 알아보고 유학에 대해 나누어 보아요.

공자의 유학은 매우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 이후 백성들의 도덕성이 무너지자 발전하였다. 구부는 유학을 퍼트렸음에도 유학을 미워하고,법을 만들었음에도 법을 미워하고, 불법을 받아들였음에도 불법을 비웃었던 왕이었다p326) 공자의 유교가 백성들에게 퍼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래서 고구려의 전통적 관습,불교숭상 등 구부가 노력한 문화의 전승이 고려까지 이어졌는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사상이 조선의 건국이념이 된 점이 아쉽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고구려의 건국이념인 자립정신과 조선초신흥정신을 조화롭게 새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자왈 맹자왈 하지 말고 구부왈... 해야 할 것 같다.


5.구부와 함께 떠나는 긴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6.p.279에서 눈에 보이는 뻔한 싸움에 나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요?그 이유는?

7.‘오합지졸’,‘개차반’으로 4행시나 3행시를 지어보아요.

(고구려 전쟁의 결과인 “승리” 라는 단어가 들어가도록 만들어 보아요)

 오: 오!~마독에서 김진명의 역사소설 고구려를 읽는다네
합: 합당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네
지: 지금 이 순간~마법처럼..
졸: 졸본성이 생각나네.,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곳, 고구려의 승리가 숨 쉬는 곳이라네

개: 개미군집 같은 군집지성 집단지성의 힘
차: 차곡차곡 눈덩이처럼 불어난 반 만년 역사를 이끈 문화의 힘이라네
반: 반 만년 문화의 지속성은 고구려 사유,고부와 같은 평화의 시대를 이끈 왕들의 진정한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네



8.구부가 중요하게 여긴 문명 즉 문화에 대해서 깊이있는 토론을 해보아요.


 문화의 중요성--김구의 유명한 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은 배반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특히 상류층간의 교류로 문화교류는 매우 강조된다(문화적인 것을 선물로 주고 교환하는 것이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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