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3개의 사과 중 하나는 세잔의 사과이다.


Q: 방구석 미술관을 읽고 어떤 화가의 삶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나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나요?


1. 폴 세잔의 사과는 겉이 아니라 속을 보려고 하였다

 마음의 1위는 폴 세잔(1839-1906)이다.서구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세가지의 사과'가 있다는 말이 있다.'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 지금은 '애플의 사과'도 그렇다.그러고 보면 '사과'는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등장한다.사과그림에 대한 해석으로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열 세살 어느날 세잔은 한소년을 구해주었다.시력이 나쁘고 체구가 작은데다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친구를 구해준 후 세상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이는 바로 유명한 에밀졸라이다.

에밀졸라는 감사의 표시로 '사과'를 선물했다고 한다. 그 이후 사과는 세잔에게 특별한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세잔의 사과는 면과붓질로 더욱 구(동그라미) 처럼 보이도록 풀어내린 기법으로 겉이 아닌 속-변하지 않는 본질(통찰)을 보려하였다.

 

2.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세잔의 초상화의 특징은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포착 하는 데 있다.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1880~1890) 그림에서 보면 소년은 손으로 턱을 괸 채 상념에 빠져있다. 이작품은 2008년 도난당했다가 4년만인 20124월에 회수되었다.

이 작품은 달력에 많이 있던 그림으로 어릴적 집안 액자에 하나쯤 걸려있던 작품이다.그래서 나에겐 매우 익숙한 그림이다. 지금도 우리집 거실에 액자로 걸려있다.


아마
** 은행 달력에서 오려서 액자로 보관 하였던 것이 지금까지 집에 걸려있게 한 것이다.작품은 비정상적으로 기다란 팔은 소년의 상념이 그 만큼 길고 오래 지속되었음을 암묵적으로 나타낸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이와 같은 형태를 왜곡하는가 하면 여러 시점에서 본 사물의 모습을 하나의 평면에 재조립 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소년의 오른쪽 어깨가 유난히 길게 표현된 것은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본시점 때문이다.

붉은 조끼는 화면에 생동감과 에너지를 부여함과 동시에 흰색 파란색 초록색.붉은색 .노란색으로 채색된 면들과 나란히 놓여 조화를 이룬다.

특히 세잔 특유의 활기찬 붓질로 실현된 색채의 멋진 조화와 견고한 구성은 작품에 생명감을 불어넣는다.세잔은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길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강렬한 색채의 표현은야수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세잔의 작품은 1958년 소더비 경매에 미술품 최고 경매 616천달러에 낙찰되었다.

다시점의 화가 세잔의 작품은 고대 이집트 미술작품의 특성과 유사하다.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위에서 바라보듯, 펼쳐놓으듯 사방의 모습을 넣었다는 것.. 그래서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 카타르 미술관에 있는 듯 하다.


3. 세잔의친구 졸라

옛것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며 늙어 가는 이들의 모습을 사랑한다

 반 고흐의 그림이 화가 개인의 심리 상태가 많이 들어간 듯 뜨겁고 정열적인 것이라면, 세잔의 그림은 좀 더 이성적으로 계산된 듯한 차가운 것이다. 에밀졸라와 어린시절을 함께 보냈음에도 세잔은 에밀졸라와 절교를 한다.

에밀졸라는 그의 책에 '재능없는 비운의 화가'에 대한 모델로 세잔을 삼았다. 아마 극적인 묘사를 위해서였겠지만 세잔은 많은 상처를 받았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고뇌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친구가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것에 대한 배신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 후로 세잔은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세잔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에밀졸라는 세잔의 그림을 입체 공간을 면과 선으로 분할해 그렸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입체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에밀졸라의 :1840~1902)고 비평한다.

세잔을 잘 모르는 사람의 평가라면 신뢰할 필요는 없다고 치부하면 말 일이지만 세잔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의 평가라 세잔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친구라고 속과 겉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어릴때부터 우정을 나눈 세잔이었지만 미술가로서 좋은 건 마네였던 것이다. 졸라는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을 좋아했기에 일찌기 '마네'를 옹호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연주의 소설을 쓰는 것 처럼 마네는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고 묘사하는 면이 많았던 반면, 세잔은 '사과'''같은 세상의 사물을 진짜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 에 고뇌하며 몰두했기 때문이다( 속을 통찰했다는 것 까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부유하게 자란 사람들의 감성으로 박물관 속 미술처럼 오래가는 인상(impressionism)을 만들고 싶다는 그만의 열정이 담겼으리라 사료된다.

어릴적, 부유한 아이들의 집에 가면 화병에 꽃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집안에 반드시 화병이나 정물화가 있는 집안의 정서,,,어둡지만 어딘지 모를 고급스러운.. 클래식한 분위기..(나도 그래서 집안을 그리 꾸미고 있다).나는 그 시절의 세잔에게 예술은 보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세잔의 작품이 앞서가다보니 졸라의 질투가 있었을 것 이라고 말해주고 싶다세잔은 부유했으니까 세상의 고뇌보다는 자신의 고뇌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최고는 최고를 알아보니까~

예술은 그사람만의 독창성이 필요하다는 것.. 세잔이 바로 증명해 주었다.

세잔의 인물화는 아내를 그린 것이 많다. 아내를 그릴때 여자로서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온순하고 조용하며 여성스러운 품성을 담아내고자 하였다.인물화에서는 그사람의 성격과 인품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세잔만의 가치관이다인물화를 그리면 모델을 150번 자세를 바꾸라 하기 때문에 인물화의 모델은 아내가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는 후대 평가가 있다.세잔의 아내는 까다로운 요구를 다 받아주는 착한 아내 였음을 모델의 자세에서도 느껴진다.세잔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어지는 것은...예술적가치에 더해 경제적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4. 말이씨가 되다

'그림을 그리다 죽고 싶다' 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던 세잔은 비가 많이 오는 날 '생빅투아르'가 보이는 길목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쓰려졌다.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폐렴으로 침대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내가 세잔을 좋아하는 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개척한 짧은 터치로 그리는 빛의색 또한 한낱 유행에 불과하게 만들어 버렸을 정도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눈앞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파악하여견고하고 지속적인 형태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 점이다.(나의가치관과비슷)자신의 고향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에서 보이는 '생트빅투아르산'의 우람한 자태많은 화가들이 생빅투아르산을 찾아 그리며 연습했고. 그 안에는 세계적인 거장 피카소도 있었다어떤 장소에 한사람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곳에는 그사람의 영혼 냄새가 가득 찬다고 한다.액상프로방스는 지금도 온통 세잔의 향기로 가득한 고마운 곳이다(이소영,하루한장그림,p477)

세잔은 순간 변하는 자연의 껍데기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를 느꼈는데 영원한 인상주의를만들고 싶어했다고 한다.

 

5. 내가 그려보고 싶은 화풍

 세잔은 현대미술의 대가 피카소와 마티스를 낳은 현대미술의 아버지 라는 것이다.앙리 마티스 야수파( 포비즘) 의 폴리네시아 바다, 폴리네시아 하늘을 보고 있자면나도 그려 보고 싶어진다. 아니 조각을 이어 붙여보고 싶어진다마티스는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색이 아니라, 작가가 사물을 보고 느낀 감정에 따라서 마음대로 색을 바꿔 표현한다는 것. 마티스를 야수파라 한다.

야수파는 작가가 느낀 바에 의해 색을 주관적으로 사용. 피카소 작품처럼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이다.

마티스는

'세 가지 색이면 충분하였다. 하늘을 칠할 파란색, 인물을 칠할 붉은색, 동산을 칠할 초록색.' 굉장히 단순하고 대담하죠. 마티스가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은 '조화'였다.내가 좋아하는 작품 속에는 5명의 등장인물이 손을 맞잡고 마치 우리나라의 강강술래 하듯 춤추고 있는 것이 있다. 몸의 형태나 곡선에서 리듬감과 유쾌함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있다. 어떤 이상적이거나 정확한 비율의 신체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몸을 표현한 것이다.

 

 6. 가고 싶은 미술관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 1순위 일본. 사람들은 맛있는 스시를 먹고, 아기자기한 잡화를 사고, 최첨단 기술을 체험하고, 온천욕을 즐기려고 일본에 간다. 그러나 미술관에 가기 위해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사실 일본은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못지않은 미술관 천국이라는 것

20세기 초부터 고흐, 르누아르, 모네, 피카소 등 해외 유명 작품들을 수집해온 덕분에 현재 일본에는 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유럽 거장들의 작품들이 다 모여 있다

 살바도르 달리와 초현실주의 작가 작품들이 많다는 후쿠시마현의 모로하시 근대미술관, 엘 그레코, 모네부터 일본인의 서양화,민예작품들이 총망라하게 있다는 오카야마현의 오하라 미술관.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설치미술가 쿠사마의 호박을 직관하여 보고 싶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환 이우환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 

일본 미술관 투어가 급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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