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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7권을 통해서, 구부와 이련의 고구려는 어떠했는지 이야기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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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적으로 고구려 책걸이를 하고 있다. 시골엄마가 보내준 나물들을 나누고 있다. 1.인물들을 통해 풀어낸 고구려7권을 통해서, 구부와 이련의 고구려는 어떠했는지 이야기해보아요. ​ 1.p294 거란족 족장이 고구부에게 당신은 고구려 사람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니 구부는 당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거란사람인가? 하고 되묻습니다. 고구려인이든 거란인이든 무엇이 중요한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면 같은 나라 사람이지 구부의 세상은 어떤 고구려를 꿈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라의 힘은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찾고 뿌리를 정확히 알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힘이 생기고 존재의 의미를 확실히 할 수 있다는 구부만의 고구려,,는 문화적 통합을 이끌기를 바랐습니다. 이련은 무예가 출중했습니다., 최정예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력을 강화하고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넓힌 시기입니다. 고국양왕(이련)의 통치는 고구려의 국력과 영향력을 크게 향상시킨 시기로 역사가 스포인 만큼, 그의 통치는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높은 견지에서 세상을 닦아 놓은 형의 신념을 다소 공유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사료 됩니다. 영토를 확장하는 군주로서의 왕의 모습은 시기 적절하게 필요했습니다. 구부와 이련이 있었기에 우리 역사가 조금 나아진 채로 반복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2.구부가 이련에게 양위를 선택한 이유는? ​ < 역사적 사실> 1) 국가 안정과 평화: 소수림왕은 자신의 통치 기간 동안에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고국양왕에게 왕위를 양도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는 권력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정치적인 혼란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적절한 후계자 선출: 소수림왕은 자신의 후계자로서 고국양왕을 적합한 인물로 판단하여

고구려6_ 소수림왕은 어떤 왕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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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6권을 읽고~~ 1.구부(소수림왕)는 어떤 왕이었나요? 소수림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71~384년이며, 부왕인 고국원왕이 백제군을 맞아 싸우다 전사하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부왕의 팽창정책 실패로 인한 사회의 동요를 극복하기 위해 일련의 체제 정비에 나섰다. 불교를 수용하고 보급하기 위해 전진의 승려 순도와 아도를 맞아들였고,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해 유교이념의 확대를 도모했다. 국가 통치의 기본법인 율령을 반포하여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에 나섰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4세기말∼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를 가져오는 기틀이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2.을불(미천왕),사유(고국원왕)와는 달랐던 구부만의 철학 은 무엇이었나요? ​ 3.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무엇을 의미하고,이것을 통해 진시황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 사회복지 행정론 시간에 중국영화 '영웅'을 본 적이 있다. 강력한 법을 세웠지만 법에의해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을 처형해야 했던 '진시황'의 이야기...우리나라가 지금 민주국가에서 '법치국가' 로 도약하는 시점이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지금의 현실과도 ..옳지 않은 일도 법망을 벗어나면 합리적인 세상이 되는 지금.. (소설에서는 단청이 아버지가 예법을 지키지 못해 맞아 죽었던 사건을 통해 예법이 좋다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표를 갖게 함) ​ ​ 4. ‘공자’에 대해 알아보고 유학에 대해 나누어 보아요. ​ 공자의 유학은 매우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 이후 백성들의 도덕성이 무너지자 발전하였다. 구부는 유학을 퍼트렸음에도 유학을 미워하고,법을 만들었음에도 법을 미워하고, 불법을 받아들였음에도 불법을 비웃었던 왕이었다p326) 공자의 유교가 백성들에게 퍼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래서 고구려의 전통적 관습,불교숭상 등 구부가 노력한 문화의 전승이 고려까지 이어졌는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사상이

고구려5를 읽으면서~고사유의 정치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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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고국원왕 고사유의 정치란 무엇인가? ​ 국민과소통하기 위해 애쓴 왕이었다. 내가 만약 그당시 고국원왕 이었다면? ​ 2.‘농부와 소’의 에피소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나누어 보세요.누구의 해석이 와닿았나요? 김진명의 역사소설 <고구려> 5권 중 구부(소수림왕) "소와 농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은 지 오래된 농부의 시체 곁을 황소 한 마리가 굶어 죽을 지경이 되도록 떠나지 않고 지키는 광경이었는데, 미물 주제에 인간보다 충직한 것이 고까워 온종일 매를 때렸는데도 그 녀석은 결코 떠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평생 제 주인의 채찍을 맞아가며 밭을 가는 것이 소라는 놈의 억울한 삶으로 압니다. 한데. 대체 어인 까닭으로 그 소는 주인이 죽고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지 알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농부를 군주로 보았고 소를 백성으로 보았습니다. " 부여구(백제의왕)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꿈과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꿈과 의지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있지. 그들이 바로 군주이다. 군주는 신화와 백성에게 제가 품은 꿈과 의지를 보여주며, 신화와 백성은 그것을 마치 제것인 양 받아드린다. 농부는 풍작을 하리란 꿈과 의지가 있었고, 아무런 이유없이 그저 살아있기만 하던 소는 그 꿈과 의지를 농부에게서 부여받은 것이다. 소는 농부가 그 꿈과 의지를 향해 달려가는 내내 그와 함께했을 것이며, 마침내 달성하였을 때에 함께 즐거움을 누렸을 것이다. 풍작의 결과물은 소에게도 일정량 돌아갔을 것이며, 그 때 소는 마치 제 꿈이 이루어진 양 행복했을 것이다. 이제 농부가 죽었으니 소는 꿈도 의지도 잃었다. 그런 까닭에 갈 곳 또한 잃고 그 자리에서 과거의 기억만을 되새기는 것이다." 모용황(모용부의 왕) "채찍이다. 소는 주인의 채찍을 맞는 것이 두려워 주인이 시키는 대로 평생토록 일만 한다. 왼쪽으로 가야 할 때는 왼쪽으로 갈 때까지 채찍을 맞고, 오른쪽으로 가야 할